캐나다 원주민의 저항과 정체성 부흥: 자결권의 새 장 (1950~1980)
캐나다 원주민의 저항과 정체성 부흥: 자결권의 새 장 (1950~1980)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캐나다 원주민(First Nations, Métis, Inuit)은 동화 정책의 상흔을 딛고 저항과 정체성 부흥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시기는 캐나다 정부의 동화 시도에 맞선 조직적 운동과 예술, 문학, 음악을 통한 문화적 재탄생의 시기였습니다. White Paper 반발, 전국 원주민 형제회 설립, 그리고 이누이트와 Métis의 정치적 조직화는 원주민의 회복력과 자결권 운동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이 글은 원주민이 어떻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고 정체성을 재구성했는지 탐구합니다.
White Paper와 원주민의 단결된 반발
1969년, 캐나다 정부는 White Paper라는 정책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문서는 인디언법(Indian Act) 폐지, 원주민의 특별 지위(Status Indian) 철폐, 보호구역(Reserve) 해체를 제안하며 원주민을 완전히 캐나다 사회에 동화시키려 했습니다. 정부는 이를 ‘평등’의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원주민은 이를 문화 말살의 연장선으로 보았습니다. White Paper는 원주민의 조약 권리와 자치권을 무시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위협했습니다.
원주민 공동체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Cree 지도자 Harold Cardinal은 The Unjust Society라는 책을 통해 White Paper를 “문화적 학살”이라 비판하며 원주민의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전국적인 저항 운동이 일어났고, Alberta Indian Association과 같은 지역 단체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맞서 조약 권리와 자결권을 주장했습니다. 이 반발은 원주민 단체들이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70년 정부는 White Paper를 철회했습니다. 이 사건은 원주민이 정치적 목소리를 조직적으로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전국 원주민 형제회: 정치적 조직화의 시작
White Paper 반발은 원주민의 정치적 조직화를 가속화했습니다. 1968년, **전국 원주민 형제회(National Indian Brotherhood, NIB)**가 설립되어 캐나다 전역의 First Nations을 대표하는 주요 단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NIB는 원주민의 조약 권리, 토지 소유권, 자치권을 옹호하며 정부와 협상하는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George Manuel(Shuswap 부족 출신), NIB의 초대 의장은 원주민의 단결과 글로벌 원주민 운동과의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NIB는 지역 부족들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1973년 NIB는 Calder v. British Columbia 대법원 소송을 지원해 Nisga’a 부족의 토지권을 인정받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판결은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이 역사적 점유에 기반함을 확인하며 이후 조약 협상에 중요한 선례가 되었습니다. NIB는 또한 교육, 의료, 경제적 기회 확대를 요구하며 원주민 공동체의 복지를 개선하려 했습니다.
예술, 문학, 음악: 문화 부흥의 물결
정치적 저항과 함께, 원주민은 예술, 문학, 음악을 통해 문화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전통과 현대를 융합하며 원주민 정체성을 재정의했습니다. Norval Morrisseau(Ojibwe 출신)는 Woodland 스타일의 창시자로, 신화와 영성을 담은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Anishinaabe의 구전 전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원주민 예술의 가치를 알렸습니다.
음악가 Buffy Sainte-Marie(Cree 출신)는 1960년대부터 포크와 록 음악을 통해 원주민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녀의 노래 “Universal Soldier”와 “Now That the Buffalo’s Gone”은 전쟁과 원주민의 토지 상실을 비판하며 사회적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문학에서는 Maria Campbell(Métis 출신)의 자서전 Halfbreed (1973)이 Métis의 삶과 차별을 생생히 묘사하며 원주민 문학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원주민의 고통과 회복력을 예술로 승화시켜 전 세계에 그들의 목소리를 알렸습니다.
이누이트와 Métis의 정치적 조직화
이 시기는 이누이트와 Métis가 독자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적 조직화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누이트는 1971년 Inuit Tapirisat of Canada(현 Inuit Tapiriit Kanatami)를 설립해 북극 지역의 권리와 자치권을 옹호했습니다. 이 단체는 이누이트 언어(Inuktitut)와 문화 보존, 그리고 환경 보호를 위해 정부와 협상했습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제임스 만 개발 프로젝트에 맞서 이누이트는 전통 사냥터 보호를 요구하며 성공적인 저항을 이끌었습니다.
Métis는 Métis National Council의 전신인 지역 단체들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강화했습니다. 그들은 Red River Rebellion 이후 잃어버린 토지권과 문화적 인정 문제를 제기하며, First Nations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정체성을 주장했습니다. Métis 지도자 Harry Daniels는 Métis를 캐나다 헌법에서 원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반을 닦았으며, 이는 1982년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결론: 자결권 운동의 씨앗
1950~1980년은 캐나다 원주민이 동화 정책의 어둠을 뚫고 저항과 부흥의 길을 열어간 시기였습니다. White Paper 반발과 전국 원주민 형제회의 설립은 정치적 단결을 이끌었고, 예술과 문학은 문화적 정체성을 되살렸습니다. 이누이트와 Métis의 조직화는 그들의 독특한 목소리를 강화했습니다. 이 시기의 운동은 원주민의 회복력과 자결권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며, 이후 더 큰 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여섯 번째 글로, 우리는 원주민의 저항과 문화 부흥의 시작을 이해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헌법 개정과 자치권 투쟁이 어떻게 원주민의 권리를 확립했는지 탐구하겠습니다. 캐나다 원주민의 이야기는 그들의 창의성과 단결로 이어집니다.
참고 자료
- Cardinal, Harold. The Unjust Society. Douglas & McIntyre, 1969.
- Campbell, Maria. Halfbreed. McClelland & Stewart, 1973.
- Inuit Tapiriit Kanatami 아카이브 및 캐나다 국립예술센터 원주민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