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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원주민의 동화 정책과 기숙학교: 문화 말살의 비극 (1870~1950)

단풍길 나그네 2025. 4. 17. 11:42

캐나다 원주민의 동화 정책과 기숙학교: 문화 말살의 비극 (1870~1950)

1870년부터 1950년까지, 캐나다 원주민(First Nations, Métis, Inuit)은 캐나다 정부의 체계적 동화 정책 아래 심각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인디언법(Indian Act)**과 기숙학교 시스템은 원주민의 문화, 언어, 가족 구조를 파괴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이 시기의 정책은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원주민을 ‘문명화’라는 명목 아래 비인간적으로 억압한 시도였습니다. 이 글은 동화 정책의 잔혹한 실상과 그로 인한 세대 간 트라우마를 탐구하며, 원주민의 회복력과 저항을 조명합니다.

인디언법: 원주민 통제의 법적 틀

1876년 제정된 **인디언법(Indian Act)**은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을 통제하고 동화시키기 위해 만든 법적 틀이었습니다. 이 법은 원주민을 ‘미성년자’로 간주하며, 그들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자율성을 박탈했습니다. 인디언법은 원주민의 토지, 자원, 생활 방식을 관리하는 동시에 그들을 보호구역(Reserve) 안으로 제한했습니다.

인디언법의 주요 조항은 원주민의 정체성을 억압했습니다. 예를 들어, Status Indian 지위는 정부가 임의로 부여했으며, 원주민 여성이 비원주민과 결혼하면 이 지위를 잃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전통 의식인 Potlatch(태평양 연안 부족의 공유 의식)와 Sun Dance(대평원 부족의 종교 의식)는 1884년부터 금지되었고, 이를 위반한 원주민은 투옥되었습니다. 또한, 원주민은 정부 허가 없이 보호구역을 떠날 수 없었으며, 투표권도 박탈당했습니다. 인디언법은 원주민을 캐나다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하고, 그들의 자치권을 말살했습니다.

기숙학교 시스템: 아동의 강제 분리

동화 정책의 가장 잔혹한 도구는 **기숙학교 시스템(Residential Schools)**이었습니다. 1870년대부터 본격화된 이 시스템은 원주민 아동을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강제로 분리해 기독교 중심의 교육을 강요했습니다. 1880년대부터 정부와 가톨릭·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전국에 130개 이상의 기숙학교를 설립했으며, 1931년에는 약 80,000명의 원주민 아동이 이 학교에 다녔습니다.

기숙학교의 목표는 원주민 아동의 문화를 말살하고 그들을 ‘캐나다인’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동의 없이 끌려갔으며, Cree, Inuktitut, Ojibwe 같은 모국어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대신 영어 또는 프랑스어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고, 이를 어기면 체벌을 당했습니다. 전통 의복은 벗겨지고, 머리는 강제로 깎였으며, 기독교 예배가 강제되었습니다. 학교는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 높았으며, 영양 부족, 질병(결핵, 인플루엔자), 학대로 인해 수천 명의 아동이 사망했습니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 수 없으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는 최소 6,000명 이상으로 추정합니다.

문화 말살과 세대 간 트라우마

기숙학교와 인디언법은 원주민의 문화를 체계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언어는 문화의 핵심이었지만, 1950년대까지 많은 원주민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했습니다. 예를 들어, Inuit 아동은 Inuktitut 대신 영어를 강요받으며 구전 전통을 잃었고, Haida 부족은 언어와 함께 토템폴 제작 기술을 잇지 못했습니다. 전통 의식과 신앙도 금지되며, 원주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했습니다.

이 정책은 세대 간 트라우마를 낳았습니다. 기숙학교에서 학대를 경험한 아동들은 부모 역할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했고, 이는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를 약화시켰습니다. 많은 생존자가 알코올 중독, 우울증, 자살 충동을 겪었으며, 이러한 고통은 그들의 자녀와 손자 세대에도 전이되었습니다. Anishinaabe 생존자 Mary Courchene은 “학교에서 내 이름을 빼앗기고 번호로 불렸다. 내가 누구인지 잊게 만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트라우마는 원주민 공동체의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원주민 여성과 가족 구조의 붕괴

동화 정책은 특히 원주민 여성과 가족 구조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통적으로 원주민 사회는 모계 중심이거나 남녀가 균형 잡힌 역할을 맡았습니다. 예를 들어, Haudenosaunee에서는 여성이 씨족 어머니(Clan Mother)로서 정치적 결정을 내렸고, Cree 여성은 사냥과 공동체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법은 이러한 구조를 파괴했습니다.

인디언법은 원주민 여성을 법적으로 차별했습니다. 비원주민과 결혼한 여성은 Status Indian 지위를 잃고 보호구역에서 쫓겨났으며, 자녀도 원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약화시켰고, 가족을 분열시켰습니다. 기숙학교는 부모와 자녀의 유대를 끊으며 여성의 전통적 육아 역할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많은 여성이 자녀를 잃은 슬픔과 공동체에서의 소외로 고통받았습니다. 또한, 기숙학교에서의 성적 학대는 여성 아동에게 특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결론: 동화 정책의 잔혹한 유산

1870~1950년의 동화 정책은 캐나다 원주민의 문화와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인디언법은 그들의 자치권을 빼앗았고, 기숙학교는 아동과 가족을 분열시켰습니다. 언어와 전통의 상실, 세대 간 트라우마, 여성과 가족 구조의 붕괴는 원주민 공동체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원주민은 이 비극 속에서도 생존하며 저항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생존자들은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치유와 정의를 요구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다섯 번째 글로, 우리는 동화 정책의 비인간적 실상을 직시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원주민의 저항과 문화 부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탐구하겠습니다. 캐나다 원주민의 이야기는 그들의 고통과 회복력을 통해 이어집니다.


참고 자료

  • Milloy, John S. A National Crime: The Canadian Government and the Residential School System, 1879 to 1986. University of Manitoba Press, 1999.
  •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Final Report: Honouring the Truth, Reconciling for the Future. 2015.
  • 원주민 생존자 증언 및 캐나다 국립진실화해센터 아카이브.